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민주’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지배형태를 말한 것이고 ‘공화’는 독재가 아니라 협의에 의한다는 통치방식을 규정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함께 공화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영구평화론을 쓴 칸트(Immanuel Kant)는 국가들 간의 영구적인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모든 국가에 있어서 시민적 체제는 공화적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공화주의란 행정권(통치권)을 입법권에서 분리시키는 국가원칙’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민주공화국에서 ‘민주’라는 말은 군주나 소수의 지배가 아니라 국민의 지배라는 뜻이요 ‘공화국’은 통치방식이 어느 일방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협의에 의해서 운영되는 국가라는 뜻이다. 공화주의의 반대인 전제주의는 “국가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국가원리”이다. 공화주의가 없으면 어떤 지배라도 전제주의가 된다.

냉전이 끝난 후 세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수렴되자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이제 국가의 운영방식인 공화주의에 주목하게 되었다.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많은 민주 국가들은 국력신장을 위해서 군사력 증강과 경제성장, 그리고 행정의 효율성에만 집중했었지 공화주의에 합당한 국가운영 방식은 등한시 했다. 그 결과 많은 나라에서 개인과 국가,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이 폭발되는 등 국가운영 상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힘·숫자로 밀어붙이기
정치 아닌 폭력
토론과 합의 전제돼야


서구의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한쪽으로는 개인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를 추상적으로 절대화시켜 개인과 국가의 끊임없는 갈등을 구조화시켰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추구하며 인간사회의 다수성(plurality)과 정책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아렌트(Hannah Arendt)에 의하면 인간은 단수인 인간(Man)이 아니라 복수인 인간들(Men)이며 어떤 사물도 단수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치란 본래 이러한 다수의 인간들이 공적 영역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현대사회의 위기가 온 것은 공적 영역의 주요한 부분을 경제가 차지하고 관료제의 행정적 지배가 우세하여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로서의 공적 영역이 위축되고 토론과 합의로서의 정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힘이나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이 토론과 합의에 의해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장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에 의해 거부권이 행사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며 마지막 수단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는 공적 영역에서 토론과 합의에 의해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공화주의 정치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 붓다는 공화주의 정치를 모범으로 삼았다. 붓다가 설한 ‘나라가 쇠퇴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 중에서 첫째가 ‘나라 사람들이 자주 모여 바른 일을 논의하는 것’이었으며 일곱 가지 법을 다 실행해서 어느 나라도 침공할 수 없다고 붓다가 설한 당시의 국가는 밧지(Vajji)라는 공화국이었다.

우리 여의도 국회도 이제는 민주공화국의 국회답게 토론과 합의에 의해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생산적이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 천 구
영산대 석좌교수, 前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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