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 산 종의회의장

불자 여러분!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 내내 싱그러운 푸른 잎을 자랑하며 성장하고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해주었던 나뭇잎은 떨어져, ‘다시 썩어 뿌리를 살릴 좋은 거름’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때맞추어 만물이 변화하여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원만한 세상 흐름일 터인데, 요즈음은 가끔 이 자연스런 자연의 움직임에 장애가 일어나 우리에게 걱정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한편으로 “세상 만물이 제 자리를 지키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이라며 나 이외 다른 존재들의 안녕과 복리를 기원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 자신과 가족을 위한 기도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불자 여러분! 혹 부처님 제자 중 아니룻다(Aniruddha) 존자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룻다 존자는 한역 경전에서 아나율(阿那律)이라고 부르는 분으로 ‘천안(天眼)제일’이라고 전해지는 분입니다.
아니룻다 존자는 출가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세월이 흐른 뒤 고향 카필라 왕국을 찾습니다. 고향에서 아버님인 정반왕을 비롯한 일가친척과 백성들에게 법을 설하고 길을 떠나자, 카필라에 있던 500명의 왕자와 청년들이 부처님을 따라 나서는데 이때 사촌동생 아니룻다도 출가를 합니다.

이렇게 출가한 아니룻다는 열심히 수행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처님 설법자리에만 오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나룻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아니룻다여, 그대는 국가의 법이 무서워 출가를 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도적이 무서워서 출가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출가했나요?” “저는 인간의 영원한 문제인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이겨내기 위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아니룻다여, 그대는 그런 굳은 신심으로 출가했다면서 왜 설법 때마다 졸기만 하지요?” “부처님, 앞으로 다시는 졸지 않겠습니다. 제 몸이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졸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 이런 약속을 드리고 난 뒤부터 아니룻다는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 수행을 하다가, 결국 눈에 병이 나자 부처님께서 의사 지바에게 치료를 부탁합니다. 지바가 진찰을 하고보니, 아니룻다의 눈은 잠을 자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이어서 잠을 자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니룻다는 “부처님께 잠을 자지않겠다고 맹세했다”면서 그 뒤로도 잠을 자지 않고 정진을 계속합니다. 결국 아니룻다의 눈은 멀어 버립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인 육안(肉眼)이 완전히 멀어버린 대신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이 생기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 천안통(天眼通)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눈이 멀게 된 아니룻다에게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승가에서는 모든 대중이 자신의 가사를 직접 기워 입었는데, 눈이 먼 아니룻다는 실을 바늘에 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걸식을 나갔다 아난다 존자를 만난 아니룻다가 부탁을 합니다. “아난다여, 내 옷이 더러워지고 다 해졌습니다. 괜찮으시면 누가 내 옷을 좀 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난다가 도반들에게 아니룻다의 부탁을 전했고 이 말을 들은 비구들이 이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여 서로 “내가 가겠다!”며 왁자지껄해지자 부처님께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를 불러 일의 경과를 자세하게 물어 보신 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내게는 아니룻다의 옷을 지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난 후 아니룻다 존자의 처소로 가셔서, 직접 해진 옷감을 펼쳐 다듬고 바느질을 하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니룻다의 가사를 새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가사를 아니룻다에게 입혀 주시고는 그 자리에서 법을 설하도록 아니룻다 존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 날 아니룻다의 설법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훌륭하신 스승님과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의 눈이 열린 제자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손수 옷을 지어주신 부처님!’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겠다고 서원한 부처님 제자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눈 먼 제자를 위해 손수 옷을 지어주셨듯이, 불자 여러분들도 가까이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에 옮기는 진실한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남을 위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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