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 산 총무원장

불자 여러분! 자연의 섭리를 통해 많은 교훈을 일깨워주는 가을입니다.
가을은 풍성한 결실을 안겨주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버림’이란 희생으로 훗날 ‘재만남’을 기약하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기도 합니다.

실로 우리 사회와 경제적 상황은 가을의 풍요를 느끼지 못한 채 다가 올 겨울의 냉기를 먼저 걱정하게 합니다. 여전히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입시제도로 인한 사교육비 과다지출과 불투명한 청년실업 문제의 해법 등은 빠듯한 가계부를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더블딥’(이중침체)을 경고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계속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려면 남과는 다른 자신의 혼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혼’이란 난관에 부딪혀 앞이 캄캄할 때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의지이자 정신력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궁을 뛰쳐나와 수많은 벌레와 독충들이 들끓는 저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당신의 몸을 의탁한 것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혼이 정각을 얻고 나서도 맨발의 45년 전법활동을 펼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얘기는 바꿔 말하자면 ‘혼을 불사르자’는 것과 상통합니다.

일본에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라는 일본전산의 사장님이 있습니다. 이 분의 성공스토리 《일본전산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30만 부가 팔려 잘 알려져 있는데, 그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에 통쾌한 역전이 있고,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괴짜로도 알려졌습니다. 기행과 파격을 서슴지 않는 그의 경영방식 때문인데, 예를 들어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순서대로 뽑았다고 합니다. 명문대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 같은 그의 방식은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자신감에 충만한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큰 이익을 남겨주었던 것입니다.

파격의 힘을 보여주는 것은 선가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불자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이 그것입니다.

석상(石霜) 스님이 어느 날 장사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백 척 높이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하면 더 오를 수 있겠는가?”
장사 선사의 답이 파격이었습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반드시 한걸음 더 나아가 시방세계에 온 몸을 나타내야 한다.”

선사의 생각은 백 척 장대 끝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극점을 가리키지만 거기에 안주하면 결국 집착하기 때문에 참된 해탈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 경지마저 뛰어넘으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파격의 일화는 설잠 김시습에게도 있습니다. 조선조 세조가 폭력과 살상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원칙과 지조를 지키고자 했던 매월당은 ‘미친 중’이 되어 장거리의 부랑자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세조가 어느 날 내전에 법회를 열고 스님들을 초대했고, 여기에 설잠도 섞여 있었습니다.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새벽 세조가 설잠을 찾았으나 없으므로 찾아오라 명하였습니다. 설잠은 거리의 똥구덩이에 빠져 얼굴만 밖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너희들,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진 놈들 속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장터의 똥구덩이가 더 깨끗하다”는 무언의 시위처럼 보였습니다. 실제 설잠은 이런 생각으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행을 벌였습니다. 그는 일체를 버렸으나 일체를 얻었고 비록 똥구덩이에 있었으나 그는 악취대신 참다운 인간의 향기를 얻었습니다. 조선조 세조 시절 그가 유난히 돋보였던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위기 앞에 절망하고 굴복하면 결국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백척간두진일보의 가르침처럼 내 혼을 불사르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어떠한 고난도 감내해 나간다면 반드시 반전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대 위인들의 삶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 버리고자 온 몸을 던지는 혼이 있을 때 얻음의 결과가 주어집니다.

자기 소신과 신념 없이 유행대로 몰개성의 가벼움만 따르는 것은 중생의 삶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참된 불자라면 진리를 얻기 위해 야차에게 몸을 던진 부처님의 본생담을 기억하며 백척간두진일보의 마음을 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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