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가 21세기에 새로운 문명의 축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문명사가(文明史家)들의 예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으로 구성된 동북아시아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공통의 전통으로 안고 있으며, 그 고도 문명의 전통과 역량이 현대에 들어 새롭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강한 교육열, 뛰어난 문화 수준, 탁월한 인적 자원을 결합시켜, 동북아시아 문명은 이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동시에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3국 가운데서 일본은 가장 일찍 산업화에 착수하여 경제 선진국에 진입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와 6. 25 전쟁으로 인한 폐허 위에서 뒤늦게 근대화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은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이 오직 탁월한 인적 자원과 노력만으로 서구에서 200년 걸린 산업화를 불과 30여 년 만에 달성하는 한강의 기적을 성취해 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 10위 권 안에 오르는 세계적 국가로 부상하였습니다.

동북아시아 고대 문명의 중심을 자처하였던 중국은 가장 늦게 시장을 개방하였지만, 그 엄청난 국가 규모와 저력으로 단시일 안에 세계적 규모의 경제 강국으로 급부상 하였습니다. 여전히 공산당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산주의 이념과는 상충되는 시장 경제를 중국인 특유의 실용 정신으로 운영하여 거대 시장의 위세를 마음껏 떨치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경제 선진국 대열에 오른 일본, 폐허가 된 좁은 땅에서 맨손으로 출발하여 기적을 일구어낸 대한민국, 공산사회이면서도 시장을 개방하여 세계적 경제 규모를 발전시키고 있는 거인국 중국으로 이루어진 동북아시아가,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나날이 증대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새로운 중심 축이 될 것이라는 예언들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렇듯 동북아시아가 새로운 문명 중심 축으로 부상하게 되자, 동북아시아의 고대 문화 전통도 동시에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삼국을 정신적으로 이끌어 왔던 불교는 동북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부상과 더불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일본 불교는 불교학계의 세계적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고, 중국불교는 오랜 공백에서 벗어나 국가적 후원 아래 다시금 옛날의 영광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경제 발전으로 한국 사회의 문화 정체성 회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위상 제고에 부응하여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불교도들은 경제 발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대에 만개하였던 불교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불교도들은 이러한 호기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각자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불교도들은 무엇보다도 부처님 지혜에 의지하여 다양한 분열을 치유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도 유일한 민족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남북 분열을 비롯하여, 지역 갈등, 종교 갈등, 계층 갈등 등, 갖가지 분열의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는 곳이 한국 사회입니다. 이런 갈등과 분열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신은 더욱 성숙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분열 상황이 반드시 불운만은 아닙니다. 모든 분열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 지혜입니다. 따라서 한국 불교도들은 한국 사회의 분열 상황을 극복하는 선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일본 불교도들은 일본 사회의 폐쇄적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서 확인되듯이, 일본 사회는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과오를 아직도 솔직하게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논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침략적 태도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 선진국의 위상에는 전혀 걸맞지 않은 집단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불교도들은 일본 사회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새로운 중화주의적 패권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 왜곡 사태 등에서 엿볼 수 있듯이, 중국은 자칫 새로운 중화주의적 야심으로 패권주의를 지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불교도들은 중국이 그러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문명 중심권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불교도들은 동북아시아 문명이 진정한 보편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시대적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에 실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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