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정 산 스님

불자 여러분!
그동안 편안하게 지내셨는지요?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시원해 제법 가을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들판에서는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고, 얼마 안 있으면 농부들은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흔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말을 하지만, 우리 불자들에게는 그 수확을 이웃과 나누는 ‘보시의 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얼핏 모든 것이 풍성하게만 보이는 계절인 가을에도 우리 땅 곳곳에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고 자기 한 몸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가 없어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어려운 사람을 돕고는 싶은데,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정말 그럴까요?
만약 그렇다면 남보다 돈도 많고 권력을 크게 가진 사람이 누구보다도 더 많이 베풀고 선행을 해야 하는데 현실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왜 그럴까요?

지난 8월 7일 한 신문에 ‘특별한 미담 기사’가 실렸습니다.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할머니 한 분이 연세대학교에 찾아와 “조금밖에 안 돼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주세요. 외부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며 3,000만원을 기부하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학교 당국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작년에도 연세대에 1억 원을 기부하였는데, 그때에도 “그 동안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받은 토지보상금입니다. 자식 셋은 대학 공부는 커녕 밥도 제때 못 먹였지만 연세대 학생들이 이 돈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좋겠습니다”라며 장학금 기부의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이 할머니는 “왜 또 큰돈을 내놓게 됐는지, 연세대와의 인연이 어떤지”라고 묻는 교직원에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승용차로 모셔다 드리겠다”는 교직원의 간청도 뿌리치고 싸구려 비닐 슬리퍼를 신은 채 버스를 타고 총총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8월 31일 모 인터넷 신문이 전한 소식인데, 해인사에서 수십 년 동안 공양주로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자신의 전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동국대에 기부하고, 사후에는 시신을 동국대 의대에서 연구용으로 쓸 수 있도록 기증 절차를 마쳤다고 합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불교 종립대학인 동국대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요긴하게 활용되길 바란다”고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가 하면, 재산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하면서도 국가에 내야 할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처벌을 받고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는 사람이 있고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을 놓고 형제·자매끼리 주먹다짐을 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하고 법정 소송으로 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 중에도 거금을 출연해 복지재단이나 장학재단을 세워 큰 금액을 “사회에 환원한다”며 신문에 사진이 크게 실리는 이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사례를 들어드린 두 할머니와 이 부자들의 마음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보시는 액수나 규모보다도 보시를 하면서 일으킨 마음이 훨씬 중요하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보시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맨 마지막 남은 한 덩이 밥이라도 자기가 먹지 않고 남에게 베풀되, 털끝만큼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마시오. 베풀면서 성내는 사람은 보시의 과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보시하면서 평등한 마음을 잃어버리면 스스로 타락하고 말게 되오. 베풀면서 인색하면 미움이 마음을 얽어매게 되오.” (《증일아함경》)

“수보리여, 보살은 법에 있어서 마땅히 머무는 곳 없이 보시를 베풀어야 하오. …… 이처럼 상(相)에 머물지 않는 보살의 보시는, 그 복덕을 사량(思量)해서는 안 되오.”(《금강반야바라밀경》)

피땀 흘려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어려운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데 써 달라”며 자기 이름조차 공개하기 머뭇거리는 할머니, 절에서 수십 년 공양주로 지내며 모은 전 재산을 “불교 인재 양성에 써 달라”며 흔쾌히 내놓는 할머니는 세금 공제 혜택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가난해서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젊은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마음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보시야말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머무는 바 없는 보시,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이고, 이처럼 진정한 보시를 행한 분들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天上)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고 만일 인간세계에 태어나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넉넉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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