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불교는 번창하고 있었다. 국왕과 온 백성이 불교를 믿었고, 국사와 왕사로 존경받는 고승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찰은 화려했다. 이처럼 불교가 만개하고 있던 그 시절, 당시의 불교를 위태롭다고 걱정하던 승려가 있었다.

14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천태종의 무기 운묵이 바로 그다. 그는 지적했다. 많은 재산을 가진 비구가 있는가 하면, 왕공대신의 세력에 빌붙어 부강을 얻어 빈약한 백성을 능멸하는 승려가 있고, 혹은 술을 즐기고, 속인과 사귀면서 창으로 화답하고, 혹은 잡된 유희와 바둑·도박·거문고·피리 등을 즐기는 파계 행위가 심하니, 위태롭고 위태롭다고 한숨지었다. 당시의 형세는 북위 무제가 불법을 파멸하던 당시와 비슷하니,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묵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승려는 없었다. 이로부터 80여 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했을 때, 승려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오백 년 조선시대 승려들은 온갖 수모를 당하며 살았다.

한용운은 조선불교의 개혁안에서 ‘승려만의 불교’, ‘사찰만의 불교’를 부정하고 ‘대중을 위한 불교’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교대중화는 근대불교의 중요한 화두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불교는 승려 중심의 불교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재가불교는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천태종의 경우는 다르다. 생활불교와 대중불교를 강조하면서 신도들을 사찰 운영의 중요한 주체로 끌어들인 것은 큰 변화였다. 그리고 도시 속에 사찰을 세우고, 사찰의 구조 또한 현대식으로 바꾼 것은 참으로 큰 변화였음에 분명하다.

승려·사찰 중심에서
벗어나 재가불자
프로그램 개발하라
재가불교 발전을 모색하자


올 여름, 지리산 실상사에서 개최된 야단법석, 사부대중이 참석한 그 법회에서 불교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그것도 조계종의 중진 스님들에 의해 자기반성의 발언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천불 만불을 모셨다고 진정한 법당은 아니라고도 했고, 총림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병폐도 지적되었으며, 선원의 정진 방법의 문제도 거론되었다. 깨달음과 수행에 지나치게 신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본뜻을 왜곡시키는 문제도 짚었다.

그러나 불교계의 여러 문제가 언제 어떻게 개선될 지는 아직도 막막해 보인다. 한두 가지 수행자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계율을 잘 지킨다고 오늘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계율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승려만의 불교로는 발전하지 못한다. 불사에 보시나 하는 신도가 아니라 재가불교의 건전한 발전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불교에 대한 보다 진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세속의 생활을 떠난 불교가 아니라, 생활을 통해서 불교가 진정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깨달음을 지나치게 신비화해서는 안 된다. 생활 속에서, 살아가면서 깨어 있는 일은 오히려 중요하다.

오늘의 세계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낡은 사고로는 미래 사회를 선도할 수 없다. 한국 불교는 보다 과감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그래야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기에.

김 상 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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