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춘 광 감사원장

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즈음 세간을 들여다보자면 다시금 ‘말의 전투’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며칠 전 유명 인기가수가 한 음악 콘서트에서 저속한 욕설과 함께 ‘지옥에나 가라’는 말로 공연을 펼쳐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의 행태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잘했다’ ‘못했다’ 나뉘어져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시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불과 몇 해 전에도 우리 사회는 서로의 말로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통합과 화해를 새 시대의 화두로 내세운 이유도 기실 말로써 상처를 입었던 우리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물론 말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적합한 수단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복잡다단한 인류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로서 문명사 중 가장 빠른 발달의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말은 종교를 태동시켰고 문학을 만들었으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보다 더 넓혀 말하자면 모든 우주조화의 주체가 곧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인 말이라는 논리로 보자면 곧 수학과 과학의 시원도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말은 우리 인류사회의 소통구조이며 발전의 기초이며 변화의 동력입니다. 따라서 말의 소중함이란 그 어떤 비유로도 표현해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무한가치를 지니고 있는 말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가는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면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서로 자기가 옳다며 주장하고 있는 말들을 ‘전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혹자들은 말합니다. ‘논쟁’이란 표현도 있고 ‘언쟁’이란 말도 있는데 굳이 격이 떨어지는 ‘말의 전투’가 온당하기나 한 말이냐고 말입니다. 논쟁이 이론과 증거를 뒷받침하여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설득의 논리라면 언쟁에는 실생활 속에서 내 생각을 굽히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고집이 묻어있다 하겠습니다. 반면에 ‘말의 전투’는 옳은 것을 가려내기 위한 시시비비 문제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하고 공격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성격이 이렇다보니 주로 인터넷상에서 가명을 내세워 이루어지는 게 특징입니다.

이러한 공격에 항상 노출돼 있는 사람들이 공인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유명인사들이 그들인 바, 그 중에서도 인기를 등에 업고 살아야 하는 연예인은 칼날 선 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아무 연유도 없는 다수 대중들의 근거없는 비난에 목숨을 끊는 연예인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혹 여러분이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말로 인하여 다른 이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도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계단체에서, 이웃주민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나의 말로 상처받은 도반은 없는지 뒤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제안합니다. 역대조사들은 후학들에게 진실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말도록 당부했습니다. 참된 뜻을 전하지 못하는 말들을 불교에서는 ‘죽은 말’이라 하여 입을 여는 자체가 그릇됐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개구지착(開口之錯)의 의미입니다. 더욱이 잘못된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와 죽음을 안긴다면 혀는 무서운 무기가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혀를 일러 설도(舌刀)라도도 일컫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입안에 도끼를 갖고 태어난다 하였습니다. 말로써 사람을 살리기도 하거니와 죽이기도 하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대목입니다.
불자 여러분!

불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짓는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간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나쁜 일을 하게 될 때 그 결과는 언제나 비극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입으로 짓는 거짓말과 험담과 비방은 사회 정의를 해치는 것이며 마침내는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걸려 자신도 불행한 경우를 당하게 됩니다. 반대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애어(愛語)와 자안(慈顔)이 늘 실행된다면 정화와 평화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물론 말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듣는 자세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고려시대 나옹 스님은 칭찬이나 헐뜯는 말을 듣더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잘한 일도 없이 칭찬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허물이 있어 시비를 듣는 것을 기쁘게 여기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야 상처받는 일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온-라인’에서 마구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한 장점을 잘 살려나가려면 거기에 걸맞은 책임과 교양도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은 그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신구의 삼업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 불자들로선 신중히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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