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07’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불교인은 얼마나 될까? 2006년 부산에서 열린 기독교 개신교의 집회에서, “범어사가 무너지기를!”, “삼광사가 무너지기를!” 하고 외치는 열광적인 기도가 울려 퍼지는 동영상을 본 불자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파문을 일으킨 행사가 바로 2004년의 ‘어게인 1907’이라는 사실은 또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 전 한 재가단체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사회를 맡으면서 마침 이런 이야기가 거론되기에 2006년 ‘어게인 1907’ 동영상을 본 분들은 얼마나 되는지 손을 들어보게 했었다. 참석자의 1/5이 되지 않았다. 꽤 의식 있는 불자들이 많이 모였으리라고 생각되는 행사였는데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대부분의 불자들이 개신교의 공격적인 포교행태를 알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는 있지만, 그 행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정확한 인식이 없기에 그에 대한 근본적 대응도 나올 수 없다. 불교에 대한 위해를 중심으로 걱정하거나, 그들의 행태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며 불교도 그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의 관용성을 내세우면서, 그들에 대해 직접 대항하기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는 모습을 통해 불교의 수승한 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한 불교인들의 반응은 모두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개신교 공격적 포교행태 심각
사회 바탕 무너뜨리는 행위에
관용 베풀어선 안돼


우선 개신교의 행태는 단지 불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모든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바탕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올바른 관점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면 종교 간의 갈등으로만 비쳐질 수 있다. 종교 간의 대결구도로 비쳐지게 되면 문제의 해결은 커녕 종교 간의 골만 깊어질 것이요, 더더욱 격렬한 마찰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건강한 미래 사회의 바탕을 무너뜨리는 행태에 대하여는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양식 있는 사람들이 함께 대응하여 응징해야 한다는 대승적 시각이 분명히 서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시각이 바로 서게 되면 불교의 관용성이 베풀어져야 할 대상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명하게 가릴 수 있게 된다. 불교의 관용성은 모든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내는 데 적극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그러한 이상적 사회를 해치는 행태에 대하여 관용성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법을 구현하려는 의지로 끈질기게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 일에 나서야만 한다.

그런데 현실의 불교와 불자들이 끈기 있게 바로잡아야 할 일은 대충 넘어가고, 발끈하는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 우리들이 비판하던 그런 행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포항시를 성시화하겠다며 문제를 일으켰던 정장식 씨와 같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품성도 갖추지 못한 이가 그 뒤에 중앙공무원 연수원장 같은 요직에 계속 기용됐을 때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포항시에서 불거졌던 문제는 전국의 주요 도시를 성시화하겠다는 개신교 공직자들의 운동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함께해야 할 건강한 미래 사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임을 바로 보고 엄하게, 또 끈질기게 바로잡는 움직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성 태 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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