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30일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 사적 150호)에서는 서탑(西塔) 복원 준공식이 열렸다. 20세기 초 일본에 의해 콘크리트로 덧씌워져 있던 미륵사 서석탑이 복원되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1992년에 9층으로 복원된 동쪽 석탑(미륵사지 9층 석탑)과 달리 서쪽 석탑(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은 6층으로 복원됐다. 그리고 두 석탑 가운데 목탑이 존재했다가 일찍이 소실됐다.미륵사 석탑의 복원1992년 당시 정부는 미륵사 동탑 복원을 추진했다. 석탑의 원형을 알려주는 문헌이나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
왜 온실 안은 따뜻한가?햇빛이 유리창을 통과하면서 실내 온도를 높이고 온기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유리창은 햇빛을 통과시켜 실내를 데우기도 하지만 또 한편 외부의 찬 공기와 맞닿아 열기를 내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실내 온도를 조절해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한다. 온실 안이 너무 더울 때면 환기창을 열어 온도를 내리기도 한다.우리가 사는 지구도 온실과 같은 원리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인간을 비롯해 동식물이 살아간다. 그래서 이를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라고 표현한다.수명은 온기가 있으므로 존재하고 온기는 수명이
이인 2019년 作검은, 어떤 것_98.5x70cm_종이에 혼합재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카필라바스투 왕궁에서 나와 출가를 했다. 이후 남하하는 여로에서 수많은 수행자를 만난다. 그중 두 명의 수행자로부터 선정을 배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짧은 기간에 그들의 수행경지에 이르렀고, 그 경지가 생사 해결의 지점이 아님을 알고 그들 곁을 떠난다. 곧 가야 근처에 와서 다섯 수행자와 함께 격심한 고행을 하게 된다. 부처님의 고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육신의 고통이었고, 아울러 6년의 고행 기간도 매우 길었다. 왜 부처님께서는 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고행을 자처했을까
칼 로저스는인본주의 심리학에 기반을 둔‘사람중심 상담’의 창시자이다.그는 당시 정신분석과 행동주의사조를 따라가던 심리치료의 방향을내담자 중심의 상담으로 바꿔놓았다.그는 도교와 불교, 그중에서도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이로 비춰볼 때, 그의 이론에선불교가 스며있다고 해도놀랄 일은 아니다.운전을 할 때 내비게이션(길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목적지를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된지 이미 오래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지도를 보거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목적지를 찾아갔지만, 요즘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초행길을 떠나는 이는 거의 없
청년 한 사람이 집을 나섰습니다.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집을 나선 것이지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그냥 두고서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아끼던 물건, 체취가 배어 있는 세간 그 모든 것을 놔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서는 이 청년. 눈치 채셨겠지요? 바로 싯다르타입니다.싯다르타 출가를 지켜본 말여느 청년과는 좀 다른 입장인 것이, 싯다르타는 한 나라의 왕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승계할 수 있었고, 명예와 부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런 자리를 포기한 채
문수사리보살 문병을 가다• 무대 - 인도 바이샬리 성• 주요 등장인물 – 부처님, 유마거사, 문수사리보살.• 주요 전개과정제자와 보살들이 모두 문병사절을 감당할 수 없다고 물러서자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보살에게 문병사절을 부촉하신다. 문수보살은 겸손한 자세로 이에 응하여 유마거사의 문병을 하러 떠난다. 모든 스님과 천신, 보살들이 거룩한 법의 자리라는 것을 알고 따라나선다.유마거사는 방을 텅 비워놓고 문수사리보살 일행을 맞는다. 문수보살이 병문안을 하면서 병의 원인을 묻자 유마거사는 “중생이 병들
방학은 거의 축제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만 먹으면 친구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고 다시 웃었다.“지금 안 놀면 놀 시간이 없다캉께.”창애가 말하면 정남이가 합창을 했다. 그리고 기자가 그리고 정선이가 그리고 내가 “그래그래.”하며 놀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놀았다. 대학에 가면 놀지 못한다고 서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사실 대학에 가서도 놀긴 마찬가지였는데.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우루루 우리 집으로 몰려가 어머니께 밥을 달라고 했다.“아이구 그렁뱅이처럼 또 몰려 왔나?”그래도 웃으며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밥알하나 남기지 않
히말라야 설산 아래 메마른 회색조의 산과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듯 고요히 앉아있다. 꿈의 실제인지 삶의 허상인지 구분조차 무의미해지는 곳, ‘오래된 미래’라고 불리는 라다크(Ladakh)는 그렇게 서 있다. 황량한 자연 풍광은 대지의 어둠과 밝음에 온전히 순응하는 동시에 대지의 근원은 온전히 스스로의 것임을 다짐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현재 라다크 지역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는 티베트 불교도인 난민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종교와 일상이 하나 된 티베트 난민공동체높고 낮은
현대 유럽불교는 단계별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19세기 후반까지는 보편적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영국을 중심으로 일부 식자층의 학문적 관심이 주를 이루었고, 세계 1·2차 대전 이후 유럽인들은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지침을 찾아 서서히 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전후 베트남 등 아시아의 불교문화권 국가에서 정치적 망명자가 유입되면서 유럽 내 불교 신자 수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중·후반기를 거쳐 불교에 대한 유럽 현지인들의 관심은 꾸준히 증가했고, 현재 여러 종단이 유럽에서 점점
귀주사(歸州寺)는 함경남도 함흥군 북주동면 경흥리(현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 경흥동) 설봉산(雪峯山)에 있었던 절이다. 고려 문종(재위 1019~1083) 때 붕현 선사(鵬顯禪師)가 ‘정수사(淨水寺)’라는 사명(寺名)의 수행도량을 지었는데,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잠저(潛邸, 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집)에 있을 때 머물며 공부했다고 전한다. 그 인연으로 1401년(태종 원년)에 왕실 원당사찰로 중창하고 ‘귀주사’로 개칭했다.1878년(고종 15년)에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듬해
[특집] ➊ 연기법과 현대 우주론 ― 글 김성구평행우주는 영원히 존재하는〈법화경〉의 우주관 연상시켜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종교와 과학은 그 영역과 목적 및 진리의 탐구방법이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를 상호비교하고 해석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가 다르지 않다고 본 과학자들도 상당수 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영역에서 오는 참신한 생각들은
불교는 전파 시기와 문화권에 따라 크게 남방불교·북방불교·금강승불교로 구분한다. 남방(상좌부)불교는 주로 스리랑카·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문화권으로 퍼져나가 부처님 재세시의 문화인 탁발을 이어오고 있는데, 요즘도 새벽에 탁발을 나가 “신도가 주는 음식을 차별 없이 받고 먹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오후불식도 지킨다.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에 전파된 북방불교는 추운 날씨의 영향으로 탁발이 어렵고, 산물이 풍부해 사찰음식이 발달했다. 남방불교와 달리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는 계율이 있고, 하루 세 끼 공양을 기본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우리는 미래에 관한 생각과 꿈을 상당 부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제대로 일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미래에 대한 막막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 가운데 들려오는 일부 정치인들의 막말과 사회지도층에 속한다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언동은 말 그대로 짜증과 함께 우리 사회의 ‘윤리적 타락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런 ‘윤리적 타락상’ 속에는 ‘정말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
인터넷 포교 선도자30년 전 ‘천불동’ 개설해온·오프라인서 신심 키워‘천불동(천리안 불교동호회)’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 한편에서 아스라한 애틋함이 솟아오른다. 부처님오신날에 연등 값을 내며 비빔밥 한 그릇으로 1년치 법연(法緣)을 때우고, 관광지 사찰의 대웅전 앞에서 삼배나 올리고 말았을, 그저 그런 중년 사내를 절 집 안마당으로 이끌어 준 소중한 인연이 바로 ‘천불동’이다. 다만 ‘천불동’에서 기세 좋게 피워 올렸던 젊은 날의 열정과 약속을 오롯이 지켜내지 못한 지금 내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그런 필자에게 PC통신 ‘천리안 불
몽골을 대표하는 종교는 불교다. 몽골은 법으로 종교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종교인구의 87%가 불교를 신앙한다. 몽골불교는 라마불교 전통을 잇고 있는데 하루 세끼 공양을 허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님이 오후불식을 한다. 음식도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다. 최근 채식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으며, 불교 기념일에는 엄격히 채식을 지킨다.종교인구 중 87%가 불교 신앙몽골은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몽골의 ‘국가와 종교법인 관계법’ 제3조(몽골 국민의 신앙의 자유) 제1항에는 ‘어떤 종교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것은
독일 베를린은 젊고 에너지 넘치고 이색적인 도시이다. 기술과 규칙의 나라로 알려진 독일의 수도이지만 통상적인 독일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독일에 살다보면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만큼 베를린은 수도이긴 하지만 평범한 소위 ‘독일인다운 삶’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도시이고, 따라서 현지인들은 베를린을 독일답지 않은 도시라고 여긴다.불교 모티브, 도시 곳곳에최근 수년 간 자본이 모이면서 월세가 껑충 뛰고 꾸준한 재개발로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는 평이 많지만 아직까지 베를린은 정치적으로 진보적
캄보디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 여러 개 있다. 그 중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전통극예술은 크메르(Khmer)의 전통춤으로 ‘캄보디아 왕실 발레’ 또는 ‘압사라(Apsara)’로 불리는 ‘캄보디아 왕실 춤극(Royal ballet of Cambodia)’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왓 스베이 안뎃의 르콘 콜(Lkhon Khol Wat Svay Andet)’은 캄보디아 왕실 춤극에 비견되는 가면극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캄보디아 불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Maurya dynasty, B.
소외계층 지원으로 시작해사찰과 산하시설로 확대‘천태종 촘촘 방역’ 주인공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은 지 1년 9개월. 누적 확진자가 20만 명을 넘는 등 우리나라도 확진자 감소와 증가를 반복하며 큰 시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방역 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종교시설발 집단 확진까지 발생해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높아졌다. 이 와중에서도 불교계는 정부의 시책을 준수하며 종교계의 방역 모범사례로 꼽혔다. 특히 천태종은 사찰과 산하시설 방역은 물론 소외계층을 위한 방역물품 후원에도 적극 나서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
부산에서의 본격적인 여고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다는 익숙하게 내 곁을 지켰고, 내가 살고 있는 초량동의 작은 골목을 넘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숙집에서 내가 입학한 남성여고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산고등학교 앞을 지나가야 했습니다.부산고 옆 하숙집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등교하기위해 길을 메우고 올라오는 부산고등학교 남학생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남학생들은 나를 눈여겨보지도 않는데 가슴이 뛰곤 했으며, 모든 남학생들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늘 얼굴이 빨간 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