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주는 자비로운 관음보살님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면 바로 이 모습이 아닐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목조관음보살상은 갸름한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가녀린 팔과 다리에 흘러내리는 천의와 옷주름, 섬세한 손끝의 긴장감과 화려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장신구를 갖추고 있다. 오른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는 내려뜨린 채 어딘가에 걸터앉은 자세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찾아간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의 관음보살 모습을 재현한 듯하다. 경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자세는 고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21세기에 살아계신다면, 어떤 학문 분야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실까? 어떤 학문의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실까? 아마도 심리학(心理學)이 아닐까 싶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원인과 치유 방법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불교와 심리학의 관계불교는 동양의 심리학이라고 할 만큼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방대하고 심오한 이론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불교는 인간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심리치유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2,50
명(明)대의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이 지은 소설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이며 대표적인 신마소설(神魔小說)이다. 현장법사가 천축(天竺, 현재의 인도)에 가서불경을 구해온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다. 오승은이 모두 지은 것은 아니고, 당(唐)대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송(宋)대의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등 민간에 전해 오던 각종 설화·전설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허균(許筠)·홍만종(洪萬宗)·이규경(李圭景) 등 많은 문인이 탐
인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주요 대책 중 하나는 숲을 살리고 가꾸는 일이다. 숲은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동시에 대기의 온도를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아가 인간에게는 휴식과 활력, 동·식물에게는 먹이와 서식지를 제공하는 ‘생명의 숲’이자 ‘치유의 숲’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10곳의 국립 치유의 숲이 있다. 올 한 해 이곳을 소개코자 한다.‘김천치유의숲’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修道山, 1317m) 자락에 위치해 있다. 52헥타르(15만 7,000평) 면적 중 7ha(2만 평)에 자작나무 숲이
처마 밑 연꽃이 천년을 산다진흙 물결도 없는데한 번 돋아나면 오직 적멸을 향해 움직인다그러니 꽃은 피고 지는 게 아니라화려함 뒤에 숨어나무의 숨결과 함께천천히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거다처음엔 그저 썩지 않게다스리는 일이라 여겼다그런데 틈 하나 없이나무를 껴안고 놓지 않는다이것은 밀봉이 아니라 밀착색(色)이 공(空)을 향해 걸어가려는 의지봉황의 춤이 허공중에 스민다바람이 색을 민다풍경 소리가 찰방찰방 헤엄친다지붕 아래 꽃들이 소리 나는 쪽을 본다색과 색이 만나 서로의 색을 탐독한다꽃의 안쪽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될 때까지나는 화두 밑
스님의 초상화를 ‘진영(眞影)’이라 합니다. 진영이란 ‘진짜 모습’, 그러니까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란 뜻이니, 오늘날의 ‘증명사진’에 해당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겉모습 속에서 참된 것을 찾는다[以影尋眞]’는 멋스런 뜻도 있지만, 그렇게 거창한 표현은 접어두겠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는 지금 대각국사 의천의 진영, 의천 스님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스님은 고려 초기인 1055년에 태어났습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지 137년 째 되던 해입니다. 스님이 살아계신다면 960세를 훌쩍 넘으셨을 터, 대
뇌원차(腦原茶)는 900년대 중반 고려에서 기원한 차이고, 그 이름이 아주 특이하다. ‘뇌원차’란 이름이 다른 나라에서 쓰인 사례는 없고, 이름이 지어진 경위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뇌원차는 고려 초 혜거국사(惠居國師, 899~974)가 만년에 갈양사(현 화성 용주사)로 하산할 때 제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이 드린 예물로 처음 등장한다. 국사의 ‘하산’은 늙고 거동이 불편해진 국사를 조용한 절로 모시는 의식을 말한다. 하산을 하면 국가의 제전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예우는 철저했다. 또 같은 사원에 여러 시기에 국
불기 2567(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힘차게 솟아올랐다. 새해에는 누구나 복덕(福德)의 힘을 입어 행복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꾸려가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는 절망과 슬픔으로 점철된 힘든 시간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의 참상을 겪어야 했고, 이로 인한 여파로 세계 경제도 크게 위축됐다. 국내에서는 핼러윈데이를 즐기려는 인파가 이태원에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부처님은 세상이 중생소연(衆生所緣)의 이치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셨다. 여럿의 인연이 계합(契合)
목조아미타좌상(조선시대, 높이 67cm, 폭 46.7cm)나발을 한 머리 위에는 계주가 두 군데 묘사돼 있고, 육계는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미간 사이의 백호는 큼직하다. 입에 미소를 약간 띠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인다.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의 법의에는 굵은 주름이, 띠를 둘러 묶은 가슴 앞을 가로질러 무릎을 감싼 군의(裙衣)는 굴곡지게 표현되어 있다. 양손은 각각 무릎 위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왕족 출신인 케마(Khema)는 마가다 왕국의 사갈라(Sagala) 시에 살았습니다. 그녀의 황금빛 피부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딸의 이름을 ‘케마’라고 지었습니다. 케마는 자라서 빔비사라(Bimbisara) 왕의 첫 번째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고, 그녀 자신도 자신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서 부처님에 대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라는 제안을 듣지 못한 척 무시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을 친견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케마 왕비는 생각했습니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보물 제1049호)〈능엄경〉을 현토(懸吐)한 언해본으로 전 10권 중 6권이다. 우리나라 강원 사교과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 하나로 ‘소화엄경’이라고도 불린다. 세조 7년(1461) 신미(信眉) 대사·김수온 등 당대 고승과 선비들이 동원돼 완성했으며, 볏짚을 섞은 닥종이에 1455년 강희안의 글씨를 자본으로 만든 금속활자 ‘을해자(乙亥字)’로 인쇄했다. 특히 6권은 관음보살의 중생교화에 대해 다루고 있어 우리나라 관음신앙 유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쇄기록이
졸업식 날이다. 대학 졸업이라니. 경남백일장에 당선돼 무시험으로 들어간 숙명여대 국문과는 내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첫 출발을 하게 해주었다. 1964년 5월 시인으로 등단을 했고, 1965년 2월 25일 졸업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졸업식에 참석한 친구들도 흥분상태였다. 분위기는 새로운 사회에 진출하는 입학식 마냥 뜨거웠고, 간혹 우는 친구도 있었다.명동과 남동생대체로 나의 대학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불안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꿈을 향해 돌진하는 젊은 열기는 그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다. 즐거웠고, 꿈 맛을 온몸으로 맛보았다고
“만화는 불량서적이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책이다.”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가에 대한 인식 역시 좋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공포의 외인구단〉. 이 한 편의 만화가 출간되면서 뒤바뀌었다. 사람들은 까치집 머리의 반항아 ‘오혜성’에게 열광했다. 만화방을 찾는 어른이 크게 늘었다. 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만화 한 편으로 한국 만화계의 판도를 뒤흔든 인물, 그가 바로 이현세(67·법명 보덕)다. ‘만화’라는 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오며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만화가 이현세를 서울 개
흙과 실뿌리대파 모종을 사서 텃밭에 심었다. 대파가 자라날 공간의 넓이와 높이와 그늘을 짐작하면서. 그러나 이 짐작은 참으로 가늠이 쉽지 않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대파는 더 큰 의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심은 대파 모종은 한데서 겨울을 날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대파 모종을 심으려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앞집 할머니의 텃밭에서 자라던 대파를 한겨울 내내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눈이 내려 한 뼘만큼 쌓여도 대파의 푸른 새싹이 꿋꿋하게 자라나던 그 기억 때문일 테다. 그 촛불 같은 생명력 때문일 테다. 얼음
진도는 고려시대 삼별초가 주둔하며 대몽항쟁을 펼쳤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진도에 주둔한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 말기의 장군인 배중손(裵仲孫, ?~1271)을 지도자로 삼고, 현종의 8대손인 왕족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 ?~1271)을 새 왕으로 받들어 몽골에 항복한 고려 조정과 대립했다. 삼별초는 용장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龍藏寺)를 궁궐로 삼았다. 지금도 고려시대에 조성된 용장사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정유재란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의 함선으로 일본 수군 함선 330척을 괴멸시킨 ‘명량해전’의 역사적
한 생을 평온하게 살다 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삶에는 고통과 갈등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불화와 반목, 학교와 직장에서 좌절과 실패, 인간관계의 갈등과 배신으로 삶이 고통스럽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낮은 대표적인 국가다. 대한민국은 놀라운 경제발전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 4만 불로 향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고 이혼율도 최상위권이다. 국민의 전반적 행복도는 하위권이며 특히 청소년의 행복도는 최하위다.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은
코살라국의 수도 사밧티에 화환(花環)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말리카(Mallika)’였습니다. 열여섯 소녀는 영리하고 예의 바르고 우아했습니다.맑고 화창한 어느 날, 말리카는 공원의 꽃밭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원 여기저기를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말리카는 한무리의 스님들이 정원 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 중 한 스님의 장엄한 걸음걸이와 아름다운 미소에 매료되었습니다. 말리카는 즉시 다가가 자신의 점심을 그 스님의 발우에 넣었습니다. 그녀는
숲속에서 부처님과 호젓하게그날도 나는 정신이 사나웠습니다. 신선한 풀을 먹으려고 하면 다른 코끼리들이 먼저 먹어 치우거나 짓밟아버리고, 물을 마시려고 하면 어느 사이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고 흙탕물을 만들어버립니다. 암코끼리들이 경쟁하듯 몸을 부딪쳐왔고, 새끼 코끼리들은 내 다리 사이로 오가면서 장난을 칩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코끼리 습성상 이런 일은 다반사이나 그날따라 나는 그 모든 것이 버거워졌습니다.나는 슬그머니 무리에서 벗어났습니다. 동료 코끼리들은 그런 나를 잠깐 바라 보았지만 관심을 두지 않더군요. 나는 숲속으로 천천히
심리학이 불교를 만난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가 예언했듯 붓다의 가르침은 주류 심리학계에 체계적으로 녹아들어 심리학이자 효과적인 상담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동안 마음에 대한 불교의 독특한 분석을 높이 평가하며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던 심리학자들이나 존 카밧진과 같이 치료 현장에 불교 명상을 적용했던 연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양 심리학계는 불교 고유의 치유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심리치료’
그림을 이용한 설법, 에토키일본에는 그림을 이용한 이야기 구연의 속강(俗講)이 발달했다. ‘그림 해설’이라고 하여 이를 ‘에토키(繪解き)’라 부른다. 대형 걸개그림이나 두루마리 그림을 관중 앞에 펼쳐놓고, 회해법사(繪解法師)가 지시봉으로 그림을 짚어가며 설명과 함께 법문을 펼치는 방식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중세 일본에 성행해 사원에서는 물론 승려 차림의 민간인 법사가 불화를 휴대하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활동했다. 이들은 불교를 쉽게 이해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흡인력이 강한 극락·지옥 등의 주제를 풀어내며 민중의 환영을 받았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