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이 인생의 긴 여정에서 항상 승리했고, 타고난 성공의 비결이 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한다. 이런 사고는 결과만 보고 쉽게 판단하려고 하는 생각의 습관에 기인한다. 그렇다 보니 승리를 얻기 위해 수없이 실패를 겪었던, 승리자의 보이지 않는 모습을 읽어 내는 사람은 드물다.승리는 “겨루어서 이긴다.”는 의미다. 그런데 승리하기 위해서는 싸우는 상대방을 꺾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장애물과 겨뤄 이겨내야 한다. 다시 말해, 승리와 성공을 위해서는 올바른 사고를 방해하는 내면의 오래된
설법으로 민중 일깨운 ‘창도사’초기 중국불교에서는 스님을 ‘교화자(敎化子)’라고 부른 적이 있다. ‘대중을 불교의 가르침으로 이끌어 교화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당시 스님들은 인도 승가와 마찬가지로 탁발을 했는데, 중국에서 걸인을 ‘화자(花子)’·‘규화자(叫化子)’라고 부르는 것도 ‘교화자’에서 유래되었다.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졌을 때는 경전이 번역되지 않아서 탁발 걸식으로 유행(遊行)하며 중생을 교화해야 했기에 초기 스님들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스님들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 운문 형식의 경구를 노래처럼 들려주
∷ 무대 _ 인도 바이샬리 성, 유마거사의 방∷ 주요 등장인물 _ 유마거사, 문수사리보살, 사리불, 천녀(天女)∷ 함께 한 대중 _ 많은 보살대중과 성문대중∷ 주요 전개 과정문수사리보살이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유마거사는 “중생이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으니, 환술로 만들어진 존재를 보듯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살이 중생을 이렇게 바라봐야 중생을 향해 걸림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실천해 나가는 길을 설파한다.유마거사의
매화의 가장 큰 매력은 긴 겨울 혹독한 추위에 지친 이들에게 봄소식을 알려주는 전령 역할을 맡고 있다는 데 있다.옛 사람들은 매화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당나귀를 타고 먼 길 여행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심매객(尋梅客)’ 혹은 ‘탐매객(探梅客)’이 생기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이들이 매화를 기다린 까닭은 봄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고목에서 얇고 여린 꽃잎을 피워내는 강인함과 절개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화에서 새로운 봄[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았으며, 고목에서 꽃을 피우는 회춘을 보았기
조선시대 유학자의 문화는 흔히 ‘선비문화’라고 불렸다. 선비는 고고한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인의예지신’을 숭상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싸움에서 진 세력은 참형을 당하거나 유배를 떠나야만했다. 이런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조정을 멀리한 채 낙향해 자연과 어우러진 집이나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면학과 수양 그리고 후학을 가르치며 말년을 보냈다. 강진 백운동원림은 불연(佛緣)이 깃들어있고, 자연을 벗 삼았던 선비들의 정신이 함께 담긴 옛 정원이다.佛緣 그윽한 곳에 건립전남 강진군은 예로부터 월출산과 고려청
대체적으로 심리학자는 마음의 수행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적 수행자도 대체적으로 심리치료나 심리학적 분석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두 집단은 서로의 다른 점을 강조하고 상대를 부정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심리학과 영적 수행이 동일한 방향을 지향한다고 보고, 두 분야의 차이점을 극복하면서 보완점을 모색하려는 심리학자와 영적 수행자도 있다. 이들은 상대를 부정할 때는 보지 못하는 상대의 장점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선 두 집단이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안내자이자 개척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불교가 서구에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란 무얼까? 행복의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심리적 안락, 즉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도 청정부동심(淸靜不動心)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맑고 고요한데 안팎의 자극에 휘둘리면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산란하다. 더구나 매일 수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복잡한 사회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현대인의 마음을 가장 산란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번뇌는 바로 걱정이다.
근래 불교계에서 학인 스님들의 설법대회와 염불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의 설법을 듣는 데 익숙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시간이었다. 신세대 스님들의 노래와 연행이 어우러지고 가요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아 부르는가 하면, 염불대회에 ‘랩 하는 스님’이 등장해 환호를 받기도 했다. 젊은이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불교가 되려면 스님들의 설법도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중생 눈높이에 맞춘 설법이처럼 ‘중생의 눈높이에 맞춘 설법’은 불교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근기가 다르고 수행
평지가 언덕이었을지도히말라야보다 높은암벽이었을지도작은 충만, 작은 기쁨이기는 했을 것이다. 딸에게 처음 받아본 작은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딸이 상금으로 받은 그 작은 돈은 절대적 충족이며, 기쁨이며, 더할 나위없는 위로이며, 그리고 어머니에게 새롭게 등장한 희망이었다.‘희망’이라는 단어는 어머니에게 아주 멀리 있거나 잔인하게 사라지고 없는 단어였다. 그 작은 축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 내게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되었고, 어머니는 ‘희망’이라는 항아리에 거대한 무게를 날마다 기도로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딸의
∷ 무대 _ 인도 바이샬리 성∷ 주요 등장인물 _ 유마거사, 문수보살, 사리불. 수미상 세계의 수미등왕불∷ 함께 한 대중 _ 많은 보살대중과 성문대중∷ 주요 전개 과정사리불이 유마거사의 좁은 방에 앉을 자리가 없음을 걱정한다. 유마거사는 그런 사리불에게 “법을 위해서 왔느냐? 자리를 찾으러 왔느냐?”고 묻는다. 사리불이 “법을 위해서 왔다.”고 대답하자 유마거사는 “법을 구하는 이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데 하물며 자리를 찾겠는가?”하고 말한 후 역설적으로 “법을 구하고 싶다면 어떤 법도 구하
소나무는 종류가 많고,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소나무 줄기 중앙의 색으로 구분하면 붉은 빛이 도는 홍송(紅松), 검은색의 흑송(黑松), 그리고 쑥색에 가까운 백송(白松)이 있다. 홍송은 내륙에 많이 자라서 ‘육송(陸松)’으로도 불리고, 흑송은 바닷가에 많아 ‘해송(海松)’·‘곰솔’로 불린다. 또 그 생김새에 따라 아래부터 줄기가 갈라지는 ‘반송(盤松)’, 줄기가 위로 뻗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늘어지는 ‘처진소나무’가 있다.소나무는 기름진 땅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성장속도가 느리다보니 빨리 자라는 활엽수에 가려 제대로 생육하지
도쿄올림픽에 이어 열린 패럴림픽이 지난 9월 5일 일본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 폐회식을 끝으로 13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패럴림픽에서 말하는 신체적 장애란 근육의 손상(하반신 마비와 사지마비·근육 영양장애·포스트소아마비증후군·척추파열), 수동적 운동장애, 사지결핍(절단과 사지 이상), 다리 길이의 차이, 짧은 신장, 긴장 과도, 운동 실조, 시각장애, 지적장애, 정신장애를 포함한다.장애는 업, 잘못된 해석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장애를 어떻게 보셨을까?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방귀희 선생이 지난 8월에 출간한 〈불교의 복지사상
‘호남의 동맥’ 전라남도 목포(木浦)는 영산강 하구와 서해바다 사이 여울목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무안현에 딸린 작은 포구에 불과했는데, 1897년 개항 후 일본영사관·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들어오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그들은 힘겨운 삶의 애환을 소설·음악 등으로 승화시켰다. 이 때문인지 목포에서는 가수 이난영(李蘭影, 1916~1965), 극작가 차범석(車凡錫, 1924~2006),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3~1988) 등 많은 문예인이 배출됐다.2000년대
불교는 전파 시기와 문화권에 따라 크게 남방불교·북방불교·금강승불교로 구분한다. 남방(상좌부)불교는 주로 스리랑카·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문화권으로 퍼져나가 부처님 재세시의 문화인 탁발을 이어오고 있는데, 요즘도 새벽에 탁발을 나가 “신도가 주는 음식을 차별 없이 받고 먹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오후불식도 지킨다.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에 전파된 북방불교는 추운 날씨의 영향으로 탁발이 어렵고, 산물이 풍부해 사찰음식이 발달했다. 남방불교와 달리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는 계율이 있고, 하루 세 끼 공양을 기본
몽골을 대표하는 종교는 불교다. 몽골은 법으로 종교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종교인구의 87%가 불교를 신앙한다. 몽골불교는 라마불교 전통을 잇고 있는데 하루 세끼 공양을 허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님이 오후불식을 한다. 음식도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다. 최근 채식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으며, 불교 기념일에는 엄격히 채식을 지킨다.종교인구 중 87%가 불교 신앙몽골은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몽골의 ‘국가와 종교법인 관계법’ 제3조(몽골 국민의 신앙의 자유) 제1항에는 ‘어떤 종교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것은
‘철의 나라’로 불렸던 금관가야는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한 쌀과 질 좋은 철을 기반으로 성장해 초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는 현재의 김해시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해반천 일대에서 금관가야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현대에 들어 김해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흐름에 따라 점차 공업도시로 변모했다. 특히 1980년대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많아졌고, 결혼 등의 이유로 정착하는 인구도 늘었다. 김해시는 이주민들이 정착해 원주민과 잘 어우러지도록 다양한 정책을 마련, 지원했다.김해는 가야문화와 다문
대만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세운 국가다. 국민의 대부분이 중국계 한족이다. 그렇다보니 음식과 문화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만 사찰에서 스님들이 별도로 즐겨먹는 음식은 없다. 하지만 엄격하게 채식을 지킨다. 도교와 불교 영향 채식인구 300만 명대만(臺灣,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한다. 현재의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항일전쟁 후 발발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네팔의 국가명은 고대 인도 문자인 데바나가리로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 18℃의 열대몬순기후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건조하다. 고산지대 특성상 야채를 구하기 어려워 과거에는 사찰에서 육식을 일부 허용했다. 현재는 엄격하게 채식을 지키고,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부추·달래·흥거)도 금한다.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주지 라마 쿤상 도르제(Lama Kunsang Dorje) 스님에 따르면 네팔 스님들은 일반적으로 오전 7시에 ‘박랩(Bhaklep)’이라고 부르는
스리랑카는 다종교국가지만, 2021년 기준 2,100만의 인구 중 70.2%가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스리랑카 국기의 갈색 측면에 있는 보리수 잎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탁발 공양해 육류도 섭취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 3세기로, 인도 마가다국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Aśoka, 재위 B.C. 273~232)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Mahinda, B.C. 285~205) 스님에 의해서다.왕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스리랑카 불교는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Anur
나는 초식동물입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산과 숲을 거침없이 뛰어다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옵니다. 고운 털 빛깔과 눈망울, 그리고 날렵한 몸매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와 내 동료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멀리 도망칩니다.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람들과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풀만 먹고 살아서 금방 허기가 집니다. 그래서 간혹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이 키우는 작물을 먹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우리는 늘 감각을 열어둡니다. 여차 하면 달아나야 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