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자들은 좀 더 알고 있겠지요? 그가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실제로 김시습은 어머니의 죽음에 삶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18세 송광사에 들어가 참선 수행에 침잠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떠돌았지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그는 불교에 치우쳐 있지 않고, 유교·불교·도교를 섭렵하여 자기 나름의 사상적인 중심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기복적인 측면이나 초현실
고려의 정치와 외교는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특성이 강하였다. 태조는 후삼국을 신라의 귀순과 후백제의 정벌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하여 통합하였다. 질서와 평화를 존중하는 선(善)에는 귀순을 강조하고 이를 해치는 악(惡)에는 부득이 정벌을 사용하였다. 통합을 완성한 태조의 계승자도 전국의 지역별 차이와 토착 기반을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의 북방민족 국가인 거란(Cathey)과 세 번이나 맞장을 떴을 정도로 고구려의 기상을 유지하였다. 한때 세계를 가장 넓게 정복한 몽골제국과도 대응하면서 외교로 돌파하고 왕정복고와 소수민족 연
불교의 삼법인 중 무상(無常)을 패션만큼 잘 대변해주는 분야가 있을까? 기존에는 봄/여름 컬렉션, 가을/겨울 컬렉션이라고 1년에 2번만 디자인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1년에 52시즌이 있다고 할 만큼 패션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즉 일주일마다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뜻이다. 패션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몸을 가려주는 실용성을 넘은 지 오래고, 개성을 표현하는 독창성도 넘어서서 하나의 아트, 팝아트(Pop Art)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시대를 대변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의 무리에 비비안 탐(Vivienne Tam·譚燕玉,
웁팔라반나(Uppalavanna, 蓮華色)는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피부는 푸른 연꽃과 같은 색상이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녀의 피부색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웁팔라반나(푸른 연꽃 색조를 가진 사람)’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 부모는 그녀를 부유한 가문의 젊은 상인과 결혼시켰습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그녀는 사밧티(Savatthi)에 있는 남편의 집으로 시집갔습니다.시어머니의 의심웁팔라반나는 시댁 식구들과 행
장마와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 여름 한 편의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악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였다. 작가가 민속학자와 국립민속박물관에 오랫동안 자문하고 조사하며 마련한 치밀한 시나리오 덕분에 드라마 전반에 한국의 민속과 무속, 귀신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그런데 드라마 내용 중 중요한 단서처럼 그림이 한 점 등장하는데, 이 그림은 우리나라 사찰에 가면 법당 한편에 걸려있는 감로도(甘露圖)다. 드라마에서는 중앙의 커다란 아귀(餓鬼) 모습에 주목해서 이 그림을
세계 최고 동화작가는 바로 부처님― 글 신현득이솝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원전은 〈경면왕경〉이솝이야기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읽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솝은 그리스 사람인데, 코끼리가 없는 그리스에서 코끼리 이야기를 어떻게 썼지?’ 하는 의문 때문이다.사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는 ‘팔만대장경’의 일부인 〈육도집경(六度集經)〉의 87번째 이야기 ‘경면왕경(鏡面王經)’ 내용 중 하나다. 이솝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불설(佛說) 동화인 셈이다.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부처님이 창작하신 동
만자문붓걸이(조선시대, 높이 41cm, 폭 40cm)붓걸이는 붓을 걸어 놓은 기구로, 문방구(文房具) 중 하나다. 이 유물은 두 개의 사각 다리 위에 만(卍)자문으로 장식한 장방형의 나무 통판을 부착했다. 통판 상단에는 다각으로 깎은 촉을 붙여 붓을 걸 수 있게 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문은 길상만덕(吉祥万徳)의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문양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대중적인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했다. 양반가에서는 서안·경상·책장 등의 문양으로 투각(透刻)이나 음양각(陰陽刻)으로 시문(施紋)했다.
최소한의 실천종교를 깊이 있게 잘 모르는 필자 같은 이의 상식으로만 봐도 성직자에게 음식은 최소한일 것 같다. 과한 음식은 포만감을 주어 졸음 같은 것을 유발하는 등 집중할 수 없게 해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방해하고, 나태로까지 이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한 살생과 자연의 훼손을 유발할 수 있음은 물론 농·어부와 같은 이들에게 불필요한 수고와 폐를 끼칠 수도 있다.이에 더해 불가에서는 ‘적당한 양을 담는 밥그릇’이란 의미의 발우(鉢盂)를 사용하여 공양함으로써 최소한의 음식 섭취를 실천하고 있다. 발우공양은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내일 아침에 나와 함께 이웃 마을에 다녀오지 않으련? 그곳에서 가져올 게 있단다.”다음 날 아침,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함께 가자고 했던 말은 무시한 거지요. 이웃 마을로 가는 길을 안다는 생각에 그냥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간신히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었습니다.‘아버지는 왜 이 마을에 오자고 하신 거야?’아침 일찍 집을 나선 탓에 밥도 먹지 못했을뿐더러 도시락이나 물조차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마을에 들어가서는 어디에서 밥을 먹어야
전미경 2023년 作자연, 공존 04 _ 28x20cm _ 종이에 자연물 전미경 작가는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작품 ‘공작새’와 ‘세레나데2’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풀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풀꽃 그림〉·〈풀꽃으로 그린 풍경〉 이 있다.
우리의 삶은 혼자 있는 시간과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행복의 조건은 혼자서도 잘 지내고 다른 사람과 함께도 잘 지내는 것이다.인생의 두 가지 지향성 : 자유와 사랑우리 인생은 복잡한 듯하지만 두 가지 지향성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 친밀
제가 태어난 곳은 유배문화 흔적이 남아있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입니다. 1952년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고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섬에서 살았습니다. 임자도에는 초등학교가 세 곳 있었고, 중·고교는 목포로 나와 하숙이나 자취를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나마 목포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40% 정도였습니다.진학하지 못한 졸업생은 가업인 농사일이나 어업을 익히거나 어릴 때부터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업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섬에서 태어나면 섬사람들의 애환을 알기에 도시에 부귀영화가 있다고 믿고
조신 스님의 꿈속 세상은 참으로 괴로웠지요? 오늘은 괴로운 꿈 이야기와는 좀 다른 꿈 이야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구운몽(九雲夢)〉 이야기입니다. 글자 그대로 ‘아홉 구름의 꿈’이라는 뜻이지요. 아홉 구름이란 이 소설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성진 스님과 팔선녀를 가리킵니다. 즉, 그 아홉 사람의 꿈이란 말이지요. 본디 스님과 선녀인데 계(戒)를 범하여 하계로 쫓겨나지요. 이 속세에서 좋은 인연을 엮어 가면서 잘 살다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조신 스님의 꿈이 괴롭디괴로운 꿈이었다면,
12세기 후반 고려는 무신집권과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라는 국내외의 커다란 시련에 직면하였다. 무신란(武臣亂)에서 무신집권으로 전환은 왕실을 뒷받침하는 정치세력의 교체이고 무신에 의하여 왕권은 이전보다 제한되었다. 다음 세기 초기 몽골족의 등장과 금에 복속되었던 거란족의 침입이 이어졌다.불교계는 종파별 변화에서 교종인 화엄종과 유가종은 문신과 결합되었다. 개경 부근 승도(僧徒)의 난은 무신의 집권에 대한 저항이었고 문신과 함께 수난을 당하였고 새롭게 종파를 구성한 천태종은 가장 미약한 종파였지만 조계종과 상통하는 선종에 속할 뿐 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의 삶과 그의 사진작품을 대하면서 나는 선사(禪師)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는 그가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불자가 된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작품은 불교적이었고 선이었기 때문이다.불교는 눈에 보이는 외형적 삶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삶을 다 아우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본래 마음자리를 그려내고 대중에게 알려주기 위해 선사들은 흔히 상징과 함축으로 가득한 선시와 선문답을 사용했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돌아간다는 말은 왠지 모르게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만 나아가던 발길을 되돌리는 그 끝에는 집이 있지요. 하루 일과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는 피붙이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온갖 물건들이 있고, 내가 써서 내 체취가 밴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나’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깥에서의 가식적이고 사무적인 가면을 집에서는 벗습니다. 쉬고 싶을 때 우리는 모두 집을 찾습니다.평생 타지에서 지낸 이들도 죽을 때 고향을 찾습니다. 여우조차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의 변곡점에서 나를 낳아준 부모에 대해 애틋한 생각을 하는 경험을 해본다. 부모님이 아프거나 돌아가실 때, 내게 인생의 기쁨이나 고달픔이 닥칠 때, 때로는 내가 부모에게 위로나 상처가 되는 말을 할 때, 뒤돌아서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쳐보기도 한다. 1,300년 전 신라의 고도 경주에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세운 사찰인 감산사(甘山寺)가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 있는 국보 감산사(甘山寺)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은 이 사찰 터에서 옮겨온 불상이다.불상 뒤의 명문과
상월원각대조사께서 단양 구인사 창건을 통해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 이후 천태불교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뭍에서 꽃을 피운 천태의 법음은 바다 건너 외딴 섬에도 전해져 섬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불심을 싹 틔웠다. 현재 일부 섬은 다리가 놓여 승용차로도 오갈 수 있고,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기도를 하거나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여름바다가 있는 천태사찰을 울릉도-남해-제주도 순으로 소개한다.1. 울릉도 삼도사·성인사·해도사― 글 조용주 기자신비의 섬 ‘울릉도’서50년 간 천태법화 꽃피워대한민국이지만 쉽게 갈 수 없고, 대부분
청동은입사향(고려시대, 높이 13.5cm, 폭 10cm)청동으로 주조한 원통형 합에 범자문(梵字紋)과 기하학적 문양을 은입사로 시문(施文)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은입사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만자문목침(조선시대, 높이 10cm, 폭 31cm)나무로 만든 베개는 ‘목침’으로 통칭(通稱)한다. 목침은 낮잠[午睡]를 자거나 잠시 누울 때 머리를 받치는 용도이다. 백제 무령왕비 관에서 출토된 목침이 가장 오래됐다. 이 유물은 판재(板材)로 짜서 복판에 풍혈(風穴)이 있으며, 양 측면에 만자문(卍字紋)을 넣
낙화 눈보라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초입에 큰 벚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여러 날 밤낮에 벚꽃을 활짝 피우고 있더니 오늘 낮에는 그 꽃잎들을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있었다. 작고, 얇고, 연하게 분홍의 색감이 있고, 또 어떤 것은 흰빛인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첫 눈보라 같았다. 전혀 차갑지는 않고 다만 설렘만 있는 첫 눈보라 같았다. 낙화이되 이런 장관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저 낙화의 장관이 봄날의 표정이요 봄날의 문양이 아닐까 싶었다. 떠나갈 적에 저와 같은 뒷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닷새 엿새 밤낮에 걸쳐 벚나무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