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라기눈과붉은 동백꽃새 달력을 받고내가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서 가장 가까운 농협은 하귀농협인데, 오늘은 하귀농협에서 새해 달력이 배달되어 왔다. 아주 큰 달력이었다. 글씨가 큼직큼직했고, 음력과 절기가 표시되어 있었고, 또 농작물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적혀 있었다. 가령 양력 1월에는 노지감귤·한라봉 등 만감류, 쪽파·마늘·만생종 양파·브로콜리·봄 감자·보리 등의 작물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른바 농사 달력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달력을 받았더니 비록 나는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중독의 원인은 탐·진·치명상의 일상화로 벗어나자“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이 구절은 ‘신묘장구대다라니’에 포함된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으로 여기서 ‘미사미’는 ‘비상(非常)’·‘독(毒)’ 등의 의미가 있다. ‘라아 미사미’는 탐욕의 독, ‘나베 사미사미’는 분노의 독, ‘모하자라 미사미’는 어리석은 행동의 독이고, ‘나사야’는 ‘낫도록 해주십시오, 벗어나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중독은 질병이다대비주(大悲呪)의 이 구절에는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청정하
산꼭대기 사찰서 먹은새해 첫날 떡국 한 그릇‘밥값하고 사는가?’사찰에서 공양할 때마다 매 순간 마음속을 강하게 울리는 ‘화두’이다. 어린이법회에 다니던 때부터 사찰에서 음식을 먹었으니 45년가량 사찰음식을 먹은 셈이다. 단언컨대 그 세월 동안, 법회 참석부터 합창단 지휘와 공연 등을 하면서 먹어본 사찰음식은 전부 맛있었다.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맑은 기운과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사찰음식이 조화를 이루는데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을까?식탐 생길 때 ‘참회진언’ 암송〈아함경(阿含經)〉에는 “음식을 정도에 맞게 절제하면 다음
수행 밑거름으로 삼을음식 만드는 신성한 영역‘주인의 자리’인 동쪽에 위치사찰 부엌을 ‘공양간(供養間)’이라 부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공양’이 식사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처럼 ‘공양간’이란 용어 또한 근현대 어느 시기에 정착된 듯하다. 이전에는 정지·정주·부엌이라 불렀고, 문헌에는 고원(庫院)·고주(庫廚)·향적당(香積堂)·주방(廚房) 등이라 기록하였다. 은해사 백흥암·백양사·금산사·동학사 등의 공양간에는 지금도 ‘향기로운 음식이 가득한 곳’이라 하여 ‘향적당’·‘향적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사찰의 공양간은 대
조선 초 성리학의취약한 사후세계불교의례로 보완한국 전통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문화재청이 지정한 국가무형문화재 중 불교 무형문화유산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다. 1973년 봉원사 영산재(靈山齋)가 중요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된 이후 2013년과 2014년 들어서야 불교 의례로 수륙재(水陸齋)가 지정됐다는 사실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당시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125호로 삼화사수륙재, 126호로 진관사수륙재 그리고 127호로 아랫녘수륙재를 지정했다. 여기서 수륙재의 무차평등한 법식(法式)과 재회(齋會)의 연원을
보석 장식한 광배와 대좌신라 장인 예술혼 깃들어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서 일반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32가지 모습과 82가지 특징, 즉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를 지닌다고 알려져 있다. 이 특징 가운데는 우리가 잘 아는 부처님의 모습처럼 튀어나온 정수리인 육계나 나선형으로 돌돌 말린 소라 모양 머리 등이 있고, 전혀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울 것 같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팔이나 물갈퀴 같은 특징도 있다.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한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불상에 이 모든 특징을 담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금빛으로 빛
전미경 2023년 作자연, 공존 06 _ 28x20cm _ 종이에 자연물 전미경 작가는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작품 ‘공작새’와 ‘세레나데2’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풀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풀꽃 그림〉·〈풀꽃으로 그린 풍경〉 이 있다.
목조촛대(조선시대, 높이 62cm, 폭 18.7cm)촛대의 밑받침은 연잎 무늬 위에 녹색이 채색돼 있고, 촛대 중간 부분에는 연꽃 줄기를 표현한 덩굴 문양이 양각돼 있다. 맨 위 촛대 받침은 밑받침과 대비되는 구조로 연잎 무늬가 동일하게 양각되어 있는데, 채색하지 않은 나무의 본색을 띠고 있다.
두 대의 자전거내 집에는 두 대의 자전거가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오면서 다른 세간살이와 함께 배에 실려 왔다. 그런데 창고를 짓지 못해 그만 바깥에 세워두게 되었는데, 비와 바람과 이슬과 서리와 눈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볼 때마다 미안하고 딱했다. 비닐로 안장을 싸매고 자전거 전체를 또 한 번 덮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는 풍찬노숙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타이어는 펑크가 났고 바퀴에는 녹이 슬었다. 점점 방치되어 추레한 행색이 되고 말았다.얼마 전 자전거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문득 났다. 아버지께서 김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매일 해야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빨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늘 바쁘고 여러 가지 걱정에 시달린다. 돈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 인간관계 문제로 걱정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모든 삶의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생자필멸(生者必滅), 즉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모르스 세르타, 호라 인세르타(Mors certa, hora incerta.)’
‘법정’ 국수? 웬 뜬금없는 법정 국수!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고 낯선 이름의 국수 이름을 불쑥 말하면서 사찰음식을 이야기하려니 나도 조심스럽다. 사찰 음식에 대한 풀이나 설명은 30만 어휘가 수록된 국어 대사전에도 없다. ‘사찰’ 따로 ‘음식’ 따로 어휘설명이 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별다른 풀이나 설명 없이도 사찰음식이 무언지는 알 수 있겠다. 간단하다. 사찰은 절이요, 음식은 먹고 마시는 것. 그러니까 수행하는 스님들이나 절에 법회 때 모인 신도들이 끼니때에 먹거나 마시는 음식, 그것이 사찰음식일 것이다. 그러니 보통의 사
불교 경전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문학작품과 동화는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전 문학이나 동화 중에도 이런 사례가 여럿 있지요. 그 가운데 〈옹고집전(雍固執傳)〉과 〈심청전(沈淸傳)〉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두껍전〉·〈별주부전〉 같은 작품도 부처님 〈본생담〉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 있어, 불교와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불교 작품을 그대로 본 따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가 비슷하기에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문화도 비슷할 수밖에 없지요. 서로 다른 수많은 시간과
육지에서 가장 넓은 아시아대륙은 거의 모든 중요한 세계종교가 기원한 요람이다.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는 아프리카 나일강에서 시작하였지만 셋은 아시아에서 시작하였고 이보다 늦은 그리스·로마 문명이 유럽의 지중해에서 꽃을 피웠다. 아메리카 신대륙은 마야와 잉카와 아즈텍문명의 고향이지만 세계종교가 기원한 지역은 오직 아시아대륙뿐이다. 종교의 뿌리는 전통종교인 세계종교와 다양한 지역에서 혁신적인 신흥종교가 서로 경쟁했지만 세계종교는 보수성에 중심을 두는 속성이 있다.종교는 민족이나 문화·전통뿐 아니라 음료와도 관계가 깊게 연결되었다. 줄
미국 뉴욕주 우드스탁 시에 농가 헛간을 개조하여 만든 콘서트홀이 하나 있었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강한 개성을 발하는 사람을 뜻하는 ‘매버릭(Maverick)’이라는 이름의 이 콘서트홀에 1952년 8월, 한 남자가 등장했다. 청중들의 박수를 뒤로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앞에 놓인 악보를 한동안 살피던 남자는 이윽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33초, 2분 40초 그리고 1분 20초를 지날 때마다 음표 하나 없는 깨끗한 악보만 넘길 뿐이었다. 그렇게 4분 33초의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갔
밧다 카필라니(Bhaddā Kāpilānī)는 맛다(Madda)국의 사갈라(Sagala) 출신 코시야 종족(Kosiyagotta) 브라흐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사갈라는 현재 파키스탄 펀잡 지역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치마티(Sucimati)이고 아버지는 카필라(Kapila)였습니다. 밧다는 어렸을 때 까마귀에게 벌레가 잡아먹히는 고통을 목격하고 수행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맛다국의 사갈라 마을에 밧다 카필라니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을 때, 핏팔리(Pippali)는 마가다국의 그레이트 포드(Great Ford)라고 불리는 마을에
〈대각국사문집〉에는 의천 스님의 수많은 글 가운데 유달리 성격이 다른 긴 편지가 있습니다. 속가의 형님인 숙종 임금에게 화폐를 만들어 보급할 것을 청하는 글입니다. 스님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주 많은 문헌을 두루 읽었고 화폐유통의 역사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재정을 담당한 연구기관의 보고서라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세속적인 일과는 결연히 작별을 고한 출가자가 돈과 관련한 내용을 이리도 길고 자세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 의아합니다.어쩌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첫째는, 출가한 스님이라 하더라도 고려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초·중·고 12년 동안 교과서에서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반가사유상.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낯설고 긴 이름이지만 온 국민이 다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이다. 필자는 2년 전 어느 봄날 방송국 교양프로그램 담당 피디(PD)를 만날 일이 있어 옛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줬다. 그때 PD가 사진을 보면서 내 설명을 듣다가 “아! 국보 반가사유상이 2점 있었어요? 설명을 듣기 전에는 사진 속 반가사유상이 같은 것이라
큰 죄업·소소한 허물상쇄하는 길은 오직 ‘참회’― 글 구미래세 가지 거울에 담긴 업의 의미송광사 선방 한가운데는 부처님 대신 커다랗고 둥근 거울이 자리하고 있다. 촛대와 향로가 놓여있어 불단을 상징하니,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수좌는 거울에 비친 본래성불(本來成佛)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거울은 다양한 상징성을 지녔다. 선방 불단에 걸린 거울이 우리의 본래면목인 ‘청정한 불성(佛性)’을 깨닫게 하는 힘을 지녔다면, 일상의 수행과 관련된 거울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비춰보는 성찰의 거울이다. 〈중아함경〉 ‘업상응품
개복숭아나무어릴 적에 복숭아나무 농사나 사과나무, 배나무 농사를 짓는 집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날에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나무 궤짝에 담아 가는 이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처럼 여러 해 동안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복숭아나무 묘목을 사서 밭에 심었으면 되었을 텐데 싶지만, 그때는 가족 가운데 그 누구도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린 묘목을 심는 대신에 나와 누나들과 동생들은 산에서 자라는 개복숭아나무를 한 그루 알아두었다. 그래서 가끔 그 개복숭아나무에 가서 열매가 잘 익고 있는지를
우리 인생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처럼 흘러간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과 같은 아동기가 지나면 초목이 푸르름과 싱싱함을 자랑하는 여름의 청년기가 찾아온다. 조금씩 기온이 떨어지면서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의 중년기가 되면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나면서 노화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눈발이 날리고 강추위가 몰아치는 인생의 겨울 노년기에 접어들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노년기의 매서운 추위와 폭설을 견뎌내려면, 인생의 월동 준비를 일찍부터 잘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령사회에서